흡연 구역: 수행적 사진술

누구나 사진을 찍고 찍히며, 사진이 되는 일이 당연시되는 시대에 “오늘날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과 질문에 직접 답을 구하고자 했던 것이 이 작업의 시작이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작업이 어떤 대상에 집중하여 그것을 묘사하고 표현하는 것이었다면, 여기서는 사진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수행적인 측면(Performative aspects)을 극대화해서 화면에 작가가 등장하지 않는 행위 예술 실험을 하고자 하였다. 그렇지만 이 작업을 구상하고 실제로 길에 나가서 사람들 앞에 멈춰 서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팬데믹이 막 시작된 참이었고, 누구든지 길에서는 마스크를 써야만 했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기약 없이 나중으로 미뤄야만 했다.

서울 중심을 관통하는 종로구 삼일대로 언저리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나를 가장 매료시킨 것은 점심 무렵 수많은 빌딩들 사이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쏟아져 나오는 인파들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한 손에 일회용 커피잔을 들고 이동하는 사람들, 동료와 함께 청계천을 걷는 사람들, 그리고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기분이 되고는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한 것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특히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남자들이었다. 지금 같은 시대에 아직까지 깨끗하게 다려진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흡연 중인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고 있다는 사실도 내 마음을 동했다. 길에서 사람의 민낯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시기였으니까. 그렇게 오래전부터 구상만 하고 있던 나의 무모한 계획과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남자들이 머릿속에서 교차되었다.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모르는 사람 앞에 멈춰 서서 아무런 경고도 없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낚아채듯 재빠르게 사진 찍는 것은 익숙했지만, 나는 그와 정반대로 일부러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하여 바로 앞에 멈춰 사진을 찍고, 그것에 상대방이 반응하도록 하고싶었다. 말하자면 완벽하게 의도적인 기획이면서 동시에 완벽한 우연이 미지의 조형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시도와 실패, 승낙과 거절의 상황이 반복되었고, 그 자리에서 많은 사진들을 삭제해야만 했다. 당연히 거절한 남자들의 사진이 매력적이었다. 그 남자들의 약점이 고스란히 담겼으니까. 나는 카메라만 들면 내 이름의 의미와는 달리 악동이 된다. 그래도 거절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이 사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분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이 남자들이 내 카메라를 부숴버리지 않을까 했던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반응이 어떠하건 우두커니 서서 연신 셔터를 눌러대도 그들이 내게 다가와 카메라를 뺏어 던지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해지거나 이 일이 적응된다는 느낌도 전혀 없었다. 매번 처음 시도하는 느낌이었고, 매 순간이 생명이 단축되는 것 같은 긴장감,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나도 당황스러운데 이 남자들은 오죽했을까. 한 번은 낙원상가 부근에 떠도는 노숙인 같은 행색을 하고 있는 어르신에게 다가갔던 적이 있다. 바로 앞에 멈춰 카메라 뷰파인더를 눈높이로 맞추자 바로 험한 욕설과 함께 주먹이 날아왔다. 그래도 그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하얀 와이셔츠에 나와 나의 카메라를 지켜주는 알 수 없는 힘이 작동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결국 “하얀 와이셔츠”라는 오브제는 이 작업의 실마리로 작동했지만 반대로 사진의 대상화를 초월하고자 했던 나에게 다시 한번 숙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