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웨이브

1930년대 서울을 중심으로 소수의 부유층만 누릴 수 있었던 파마 문화는 전(戰) 후 한국 여성들의 일반적 머리 양식이 되었다. 그 당시 파마 값은 대략 쌀 두 가마니, 풍족하지 못했던 그 시절 한국 여성들은 최대한 뽀글뽀글하게 그 모양을 오래도록 간직하고자 했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를 비롯해 나를 둘러싼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그 머리 모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고 이는 ‘아줌마 파마’라는 하나의 양식이 되었다.

미용실에 다녀온 엄마가 파마머리를 뽐내며 예쁘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촌스럽다고 대답하였다. 엄마는 의지가 강했다. 머리의 파마기가 조금이라도 풀릴 기미가 비치면 곧장 다시 미용실을 찾아가 파마를 하고 돌아왔다. 그 모습은 마치 엄마가 갖고 있는 강박관념,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만 했던 강박적인 의무감과도 겹쳐 보였다. 나는 어떻게 이 머리 모양이 그 세대를 대변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얽히고 설킨 그녀들의 머리카락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을까. 이러한 궁금증은 나로 하여금 그녀들을 사진 찍게 하는 집착으로 바뀌었다. 엄마는 언제부터인지 더 이상 파마를 하지 않는다. 아마도 가족들을 위해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점부터였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나는 점점 이 뽀글뽀글 말려있는 웨이브에 매료되었고 몰두했다. 때때로 이모들은 엄마의 파마기 없는 머리 모양을 보며 초라해 보인다고 이야기 하나보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게 다시 묻곤 한다, 다시 파마를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해변을 요동치는 파도(wave)처럼 끝없는 파마의 유혹과 씨름한다.